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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앤 아트

연극 [아마데우스]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죠.

이제부터 우린 영원한 적(敵) 입니다"

 

 

연극 '아마데우스' 포스터. (사진출처=페이지원)

 

연극 <아마데우스>는 18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궁정악장 살리에리라는 실존 인물의 예술을 향한 끝없는 욕망으로부터 동시대 음악가인 모차르트의와의 대립을 통해 신과 인간 그리고 영원한 예술에 대한 염원을 그리고 있다.

 

1979년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연극 <아마데우스>는 영국 초연 후 미국 브로드웨이를 거쳐 전세계로 퍼지게 된다.

다른 음악과 삶을 추구했던 둘의 관계는 모차르트가 30대 중반에 요절하게 되며 살리에리가 그 죽음의 배후라는 풍문이 생기면서 후대의 창작자들의 창작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러시아 작가 <푸쉬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1980년대 천재 모차르트의 삶을 그린 영화 <아마데우스> 등이 있지만 특히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의 성공으로 인해 마치 이 두 음악가의 갈등과 죽임이 실제의 사건이었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질투의 화신이 된 살리에리...

 

살리에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으로 24살 비엔나 오페라 감독이 되고, 38살에 궁정악장으로 승승장구하였지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의 모차르트의 등장으로 비극이 시작된다. 후대에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주류 음악들과 비교해보면 그는 신분 계급, 음악적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혁신적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엔나의 음악은 왕실과 귀족을 위해 음악가들이 의뢰를 받는 형태로 작곡을 하고 그들의 지원과 후원속에 연주회와 오페라를 올릴 수 있었다.

 

종교적 이야기를 담은 균형과 형식에 맞춰 작곡을 하던 살리에리에게는 방탕한 사생활과 천방지축 삶에도 불구하고 신의 사랑을 받아 탄생하는 그의 음악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하게 된다.  결국 살리에리는 간절한 자신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재능을 허락하지 않은 신마저 저버리게 되고 본격적으로 모차르트의 앞길에 방해공작을 펼친다. 그 때문인지 경제난으로 힘들어진 모차르트는 결국 홀로 병에 걸려 죽음에 가까워진다. 그를 궁지로 내몰던 살리에리는 신에게 버림받은 듯 파괴되어 가는 모차르트를 보며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병약해져가는 모차르트 ㅜㅜ

 

그리고 모차르트에 대한 오랜 기간의 질투와 좌절감이자 결국 평범함을 인정하지 못한채 스스로를 부정하며 죽여왔던 자신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단 한 가지이자 모든 것, 그것은 영원히 기억되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인간의 끊없는 욕망과 갈망은 시대를 넘어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살리에리의 독백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질투, 우월함, 원망, 연민 그리고 용서와 같은 감정들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공간을 흐르는 괴로움과 갈증에 대한 서사가 관객을 내면으로 깊이 끌고 들어가 극을 본 후 마음이 숙연해진다. 

 

일종의 음악극이기도 한 이번 연극에서는 극의 전개 흐름에 따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테마 음악이 등장하고 음악은 그들의 삶의 굴곡을 투영하고 있다. 화려한 궁정의 축제 음악부터 서민들을 이야기를 등장시킨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모차르트의 몸이 쇠약해지면서 점차 커지는 살리에리의 분노의 마음을 대변하는 오페라 <마술피리>, 죽음을 앞둔 모차르트의 미완성 곡이었던 <레퀴엠> 까지. 특히 <마술피리>는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화려한 아리아로 유명한데 청아한 음색의 꾀꼬리 소리를 내는 이 부분이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에 끓어오른다" 의 부분이었다니 그 내용을 알고 보니 매우 섬뜩한 오페라가 아닐 수 없다. 

 

레퀴엠을 완성해가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사진 출처=채널 예스)

살리에리 역의 김재범 배우의 독백이 극의 중심을 탄탄히 잡고 있었고 세밀한 감정의 전달력이 좋았다. 무엇보다 긴 대사를 막힘없이 소화하는 것을 보고 그 노력에 감탄했다. (초연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리고 처음으로 마주한 박은석 배우는 드라마 팬트하우스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초반의 천진난만한 아마데우스를 연기하며 무대의 동선을 넓게 활용하며 움직이는 동작이 매우 다이나믹했다. 방탕했던 모습에서부터 후반의 쇠약한 모습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잘 보여주었다. 굉장히 체력적으로도 힘들 것 같았는데 하루에 2회 공연을 한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극에서 일종의 코러스를 담당하는 “작은 바람들"의 존재들도 극의 풍성한 감정을 고조시켜 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본 연극 <아마데우스>는 내가 좀 더 다양한 작품을 섭렵하고 싶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예전에 본 뮤지컬 <모차르트>의 넘버를 좋아했었는데 모차르트의 천재성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극이었다면 2인자로의 삶, 살리에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우리 모두가 살리에리와 같이 어떤 소원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매일의 평범함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나의 평범함에 좌절하지 말고 내가 가진 가치를 찾고 성장해 나가면 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느낀 배우와 무대에서 전달되는 에너지와 공기가 좋았다. 몰입하는 느낌. 사색하는 시간. 

내가 공연을 보는 이유는 그 한순간 내 마음에 깊게 파고드는 울림과 전율의 시간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