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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마케팅 앤 문화

[창극] 국립창극단 - 나무,물고기,달

달오름 극장의 처음 보는 원형 무대에서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보지 못했던 국립창극단의 창극을 보게 되었다. (감개무량...) 믿고 보는 창극단의 공연이기에 이자람 음악감독이 관여한다는 정보 외에는 극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상태였다. 아, 내가 애정 하는 창극단 배우들을 다 볼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간략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엄한 소원나무를 찾아 수미산으로 떠나는 소녀, 소년, 순례자의 이야기. 본디 수미산 꼭대기에서 노딜던 물고기는 수미산에서 떨어져 인간의 땅으로 내려오게 되고 그곳에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지질한 가난 때문에 따듯한 밥 끼 먹고 싶은 소원을 품은 소녀는 물고기의 안내대로 소원나무를 찾아 떠나게 되고 도중에 소년을 만나게 된다. 깊은 산 홀로 소치기 소년은 순례자를 만나 진짜 가족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 던 중에 소녀를 만나고 둘은 함께 수미산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슬픈 사연을 품은 나무가 있었고 드디어 소원나무 앞에 도달하여 마음에 품은 소원을 생각하기만 하면 눈 앞에 모든 것이 펼쳐지었다. 햄버거, 망고, 키위, 비단이불, 아름다운 여인... 이게 웬 떡인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행복에 겨워할 때 갑자기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 불안이 나와 그들을 휘감아 버린다. 소원나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결핍 모두를 투영하는 무서운 것이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내 삶을 한낱 햄버거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는 소원나무와 같은 대상이 보여주는 시각적 환상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한 내명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마치 순례자가 일생을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한순간 미물을 밟는 바람에 공이 무너지는 것처럼. 그토록 원했던 것이 눈 앞에 펼쳐지어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욕망의 끝은 누구도 알 수 없고 과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를 되묻는다. 순례자가 시종일관 노래하는 "몰라~ 몰라~ 아무것도 몰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라~"가 이 극을 대표하는 노래인 듯하다.

 

중국, 인도 등의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는 이 작품은 20년 동안 공연 창작집단 "뛰다"에서 연극을 연출해온 배요섭 연출가와 여러 번 국립창극단의 음악을 책임진 작창, 작곡, 음악감독에 이자람 감독의 협업 작품이다. 처음 창극 연출을 맡아 연습시간, 제작과정, 소통 방식이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낯설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접근법이 창극이 어떻게 판소리의 보석 같은 요소를 살리면서 오페라, 뮤지컬의 좇아가지 않고 자기만의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나를 고민했다는 부분이다. 판소리에 극을 입힌 창극이 어떻게 더 창의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엿보게 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자람 음악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기본적인 선율 사이에 선율, 선법, 조성들을 twist 시켜 더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장면들 속에서 오롯이 소리의 멋을 즐길 수 있도록 하면서 여백을 남겨두는 것.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현도 덜어내고 담백하게 만드는 것이 연출가의 의도였다고 한다. 배우가 9명이 등장하는데 확실히 이번 작품은 의상도 연기도 정제되고 간결한 느낌이었다.

작품에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점 중에 하나가 춤인데 알고 보니 탈춤의 기본 동작 중 오금, 돋음, 어깻짓, 고갯짓(탈질)을 바탕으로 두고 매일 아침 안무가와 배우들이 함께 연습을 했다도 한다. 그중에서 작년 12월 신입 단원으로 국립창극단에 들어온 물고기(김수인)의 춤이었는데 남자 배우가 연기한 물고기는 선이 고우면서 동시에 힘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춤이었다. 이번 무대는 신입 단원 3인방의 데뷔 무대였는데 내가 알기로는 5년 만에 뽑은 신입단원으로 무시한 경쟁률을 뚫고 사슴 나무 역(왕윤정, 김우정)과 물고기, 코끼리 역(김수인)의 연기가 이거 신입의 무대가 아녔소이다! 이미 국립창극단의 허리 역할을 독독히 하고 있는 기존의 젊은 소리꾼들의 연기에 버금가더이다. 앞으로가 너무 기대됩니다.

 

끝으로 무대에 소품 하나 없이 간소하였지만 원형 무대 뒤에 배우들의 동적인 모습을 조명을 활용하여 그림자로 표현한 부분이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의상도 놓칠 수가 없는데 은은한 색상과 소재감이 너무 좋아 보였다. 겹겹 레이어로 시공간적 질감을 표현했고 신과 인간 세산의 공간적 경계와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를 넘나드는 시간성을 제의식을 상징하는 백색을 활용했다는 의상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덜어낸 서사구조와 표현으로 인해 이전 작품에 비해 갈등, 위기 구조나 절정에 달하는 부분에서 오는 찌릿함은 덜하였으나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보게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계속 발전하는 국립창극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달지기 역 (서정금, 이소연, 유태평양)   

소년 역(민은경)

소녀 역(조 유아)

순례자 역(최호성)

사슴 나무 역 (김우정, 왕윤정)

물고기, 코끼리 역(김수인)